KFC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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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by 방구석평론가 2020. 1. 30.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채찍질한 노익장의 성공신화 - 할랜드 샌더스


 할랜드 샌더스는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중퇴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때 죽었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사이 그는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가 열두살 되던 해 어머니마저 재혼하여 떠났습니다. 그는 열 살 때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25년 동안 농장 인부, 자동차 페인트공, 전차 차장, 농부, 연락선 기사, 보험설계사, 철도 노동자 등을 전전하며 박봉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한 달에 2달러를 받으며 농장일을 하고, 단돈 몇 푼을 벌기 위해 석탄을 나를지라도 근면함을 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성공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한 세일즈맨이 코빈(corbin)에는 마음에 드는 식당이 하나도 없다고 투덜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일즈맨의 말은 어릴적부터 요리에 취미를 가지고 꾸준히 요리 연습을 해온 샌더스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극이 새로운 출발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경영하는 주유소 창고를 개조해서 부업으로 배고픈 여행자들을 위한 식당을 열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39세 였습니다.

 샌더스가 어머니에게서 배운 남부 지방의 토속적인 음식들인 닭튀김, 시골식 햄, 야채, 비스킷 등은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그의 가게의 음식 맛에 대한 평판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결국 밀려드는 손님을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힘을 얻은 샌더스는 아예 주유소 문을 닫고 '샌더스 카페'라는 식당을 개업하여 42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식당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코넬 대학에서 8주 동안 '식당과 호텔 경영자 과정'을 이수하는 등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기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샌더스의 특별 메뉴는 닭튀김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손님들의 다양한 입맛을 맞추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요리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며, 향신료와 양념을 다양하게 혼합하여 완벽한 맛을 찾기 위한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덕분에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그는 루비 라푼 주지사로부터 모범시민에게 수여되는 명예직함인 '켄터키 커넬'에 임명되는 등 그 지역에서 상당히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샌더스에게도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식당 앞 도로 대신 다른 곳에 새 도로가 생기면서 겨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손님이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샌더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련을 이기기 위해 요리 비법을 가르쳐 주고 로열티를 받는 일종의 체인점 형태로 사업을 전환하여 이에 알맞은 계약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가 첫 번째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했을 때 그는 이미 65세 였습니다. 그러나 고령의 나이와 관절염 따위는 그에게 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샌더스는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무려 25만 마일을 여행하면서 체인점을 모집하였고, 마침내 1952년부터 사업은 크게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체인업체를 마케팅의 명수인 존 Y.브라운 주니어에게 팔았는데, 브라운은 커넬 샌더스의 이미지를 홍보에 이용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KFC의 살아있는 심볼로 남게 하였습니다. 샌더스는 나이가 성공을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KFC 창업주 할랜드 샌더스의 이야기였습니다.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 할랜드 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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