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미소 이원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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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인물

별들의 미소 이원설 박사

by 방구석평론가 2020. 2. 8.



생사의 갈림길에서 별들이 전해준 소명의 소리



 이원설은 교육부 고등교육국장, 주미 장학관, 경희대 부총장, 한남대 총장을 역임한 한국 기독교 지성계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미국에서 출판된 그의 저서들은 십 수년씩 미국내 여러 대학에서 정규 강의교재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은 원동력은 바로 젊은 시절 생사의 갈림길에서 발견한 소명입니다. 그가 가슴에 깊이 새긴 소명...


 1950년 8월 한국전쟁 당시 연세대 학생이었던 이원설은 목사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숨바꼭질하듯 공산당을 피해 도망다녔습니다. 그러다 결국 마을의 민청원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그는 어디론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민청원 중에 한 명이 "동무는 반동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니 손을 묶어야 합니다. 이것은 조선인민공화국의 법입니다"라며 그의 두 손과 허리를 밧줄로 묶었습니다. 

 이원설의 바로 뒤에는 장총을 가진 자가 등에 총을 겨누고 뒤따랐고, 그 뒤에 약 10명의 민청원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아무도 말이 없었고, 삼엄한 분위기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 조금가니 부락이 나왔고, 그 곳에서 언덕을 올라가다 보니 벼랑이 보였습니다. 약 20분 정도 걸어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뒤에는 11명의 적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고 그야말로 사지의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만 하는... 그는 진심으로 살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신이 여기서 자신을 살려만 준다면 무조건 '신의 도구'가 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처형될 벼랑 가까이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있던 총잡이가 옆으로 다가서면서 그의 발을 차는 것이었습니다. 총잡이의 동작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이원설은 순간적으로 총잡이의 발을 피하면서 동시에 "이얏!" 하는 고함과 함께 그 때까지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틀어오던 양손의 밧줄을 온 힘을 다해 풀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총잡이가 휘청하는 순간 왼손으로 총대를 잡고 오른 손으로 총잡이의 머리를 쥐고 발길질을 해댔습니다. 주위에 있던 다른 민청원들은 총을 잘못 쏘면 총잡이가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뒤엉켜 싸우던 중 총잡이가 온 힘을 다해 잡고 있던 총을 잡아 당기는 바람에 이원설은 총신의 일부를 놓쳐버렸습니다. 순간 그는 총잡이를 밀어내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걸음도 가기 전에 총알이 빗발쳤습니다. 그는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사력을 다해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가 영산강 지류에 당도했을 때 요란하던 총소리도 멈추었습니다. 여름밤의 적막이 그를 에워쌌습니다. 그는 가빴던 숨을 내쉬며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며 그에게 손짓을 보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별들의 배후에서 신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중얼 거렸습니다. 

 

 "저를 당신의 도구로, 당신의 도구로!"


 그 후로 이원설은 고난이 닥칠때마다 그날 밤에 본 별들의 미소를 되새기며 목표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는 불과 5년 반만에 총신대학과 미국 오하이오 노던 대학, 웨스턴 리저브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 등을 마쳐 세인들을 놀라게 했고, 1977년 모교인 오하이오 노던 대학에서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모교를 빛낸 세 명의 동문에게 수여하는 명예법학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는 그 때의 약속대로 '신의 도구'로서의 충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비전은 '운명의 빛' 입니다.



 존경하는 이원설 박사님의 일화였습니다. 저는 무교지만 이런걸 보면 종교의 힘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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