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평론가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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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을 사로잡은 한국인의 연설 - 이원설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의 밑거름이다 이원설 박사는 1955년 25세 때 미국유학을 갔습니다. 당시는 한국 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 교회나 로터리클럽 등에서 강연 초청을 자주 받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약간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 앞에 서서 말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특히 '미국인들은 영어밖에 못하지만, 나는 한국말은 물론이고 일어, 영어, 그리고 독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서툴렀지만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해서 그런지 미국인들은 그의 강연에 크게 호응했고,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50여 년 동.. 2020. 2. 11.
에이브러햄 링컨의(Abraham Lincoln) 2가지 일화 소개 1. 링컨식 괘씸죄 처벌법, 분노와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지 마라 남북전쟁 도중 남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이 패잔병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후퇴하여 워싱턴 포토맥 강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뒤에는 승리한 북군들이 추격하고 있었고, 강물은 너무 불어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리 장군은 진퇴양난의 함정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북군 입장에서 이것은 리 장군을 포로로 잡고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하늘이 주신 황금의 기회였습니다. 북군의 링컨은 승리가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미드 장군에게 작전회의를 소집하지 말고 즉시 남군을 공격하라는 명령 전보를 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즉각 공격을 개시하기위해 미드 장군의 답신을 받아올 부관까지 따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미드 장군은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명.. 2020. 2. 10.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난 흑인이 미국의 입이 되다 - 콜린 파월 프레젠테이션으로 성공의 사다리를 2001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그에 이은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태, 그리고 미국의 아프간 공격으로 이어지는 숨막히는 세계정세 속에 항상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콜린 파월(Colin Powell)' 미국 국무장관이 그 주인공입니다. 지금 각종 매스컴은 연일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도하고 있으며, 그의 말이 미국의 행로는 물론 세계정세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합참의장 시절부터 콜린 파월은 세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는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흑인으로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1989년 합참의장에 임명되어 레이건, 부시, 클린턴 대통령을 보좌했고, 1996년 미국 언론에.. 2020. 2. 9.
별들의 미소 이원설 박사 생사의 갈림길에서 별들이 전해준 소명의 소리 이원설은 교육부 고등교육국장, 주미 장학관, 경희대 부총장, 한남대 총장을 역임한 한국 기독교 지성계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미국에서 출판된 그의 저서들은 십 수년씩 미국내 여러 대학에서 정규 강의교재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은 원동력은 바로 젊은 시절 생사의 갈림길에서 발견한 소명입니다. 그가 가슴에 깊이 새긴 소명... 1950년 8월 한국전쟁 당시 연세대 학생이었던 이원설은 목사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숨바꼭질하듯 공산당을 피해 도망다녔습니다. 그러다 결국 마을의 민청원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그는 어디론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민청원 중에 한 명이 "동무는 반동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니 손을 묶어.. 2020. 2. 8.
"그 책임은 내게 있다" 해리 트루먼 탁월한 언어는 굳건한 신념에서 나온다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은 "그 책임은 내게 있다"라는 담백한 한마디로 미국과 세계를 이끌어 가는 리더쉽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물론 그를 위대한 웅변가로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대한 대통령이라고는 부릅니다. CNN의 명사회자 래리 킹은 트루먼에 대해 "그는 비록 매혹적인 연사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탁월한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였다"라고 평가합니다. 래리 킹은 트루먼을 가리켜 화려하고 멋진 말을 하는 대신 직설적이고 단순 명료한 말로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정책 목표를 알기 쉽게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편안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였다고 말하고 있.. 2020. 2. 6.
코카콜라 창업자 아사 캔들러 미래를 향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라!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인 1886년, 어느 한적한 읍내 한복판에 늙은 의사 한 명이 나타났습니다. 늙은 의사는 자신이 조제한 어떤 액체와 그 조제비법을 담은 설명서를 팔기 위해 그 곳에 온 것입니다. 그는 마차를 세워 놓고 약국으로 들어가 젊은 주인과 흥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한 시간 이상이나 카운터에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윽고 의사는 마차로 돌아가 낡고 큰 주전자와 메모지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주전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난 주인은 안주머니에서 지폐뭉치를 꺼내 의사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지폐뭉치는 2천3백 달러로, 지금으로 치면 아파트 2채값에 해당됩니다. 주전자와 메모지를 받아 든 순간부터 약국 주인은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 2020. 2. 1.
무일푼 백수였던 에드윈 반스 패기와 결의, 진지한 열정만 있다면 불가능이란 없다.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왕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살입니다. 그러나 그가 세계 최고의 전기제품 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의 설립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에디슨은 발명가이자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발명품들을 시장에 내놓고 사업으로 성공시킨 배후에는 에드윈 반스(Edwin C.Barnes)라는 공동 사업자가 있었습니다. 반스가 에디슨과 공동 사업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졌을 때, 그의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격정으로 들끓었습니다. 다른 것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머릿속에는 오직 에디슨의 동업자가 되어 있는 모습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에디슨의 공동사업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 2020. 1. 31.
KFC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채찍질한 노익장의 성공신화 - 할랜드 샌더스 할랜드 샌더스는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중퇴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때 죽었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사이 그는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가 열두살 되던 해 어머니마저 재혼하여 떠났습니다. 그는 열 살 때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25년 동안 농장 인부, 자동차 페인트공, 전차 차장, 농부, 연락선 기사, 보험설계사, 철도 노동자 등을 전전하며 박봉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한 달에 2달러를 받으며 농장일을 하고, 단돈 몇 푼을 벌기 위해 석탄을 나를지라도 근면함을 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성공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한 세.. 2020. 1. 30.